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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김중혁의 ‘영화당’ 제104회. 악에 대한 섬뜩한 보고서,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다큐 2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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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브로드밴드 2018. 5. 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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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당 전 회에서는 오싹한 한국공포영화를 보여드리며 조금씩 더워지는 날씨를 이겨낼 방법을 알려드렸는데요. 오늘은 초자연적이고 미스터리한 공포가 아닌, 인간만이 가져올 수 있는 섬뜩한 공포, 인간의 악에 대한 보고서 역할을 하는 다큐멘터리 두 편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영화를 보시기에 앞서 인도네시아 현대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요. 간단하게 요약해드리겠습니다.

 

인도네시아의 현대사를 살펴보면 독립운동가 출신의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가 독재를 하게 되는데, 그의 정치적 기반은 공산당이었습니다. 그런데 수카르노 반대파인 군부세력과 무슬림 종교 세력이 부패한 독재정권에 쿠데타를 일으키게 됩니다. 1965년 9월 30일. 9. 30. 사건입니다.

 


쿠데타는 실패하게 되는데, ‘수하르토‘ 장군이 쿠데타를 제압한 뒤, 수카르노 대통령을 쫓아내고 이후 30년의 독재를 벌이게 됩니다. 수하르토 장군은 반공을 내세워 전 정권의 기반인 공산당원과 주민 등 100만 명 이상을 학살하게 됩니다. 이때 프레만이라는 깡패조직이 학살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액트 오브 킬링(2014)

 

요란하고 충격적인 가해자의 시선, <액트 오브 킬링>입니다.



앞서 언급한 1965년 쿠데타 당시 100만 명이 넘는 공산주의자, 지식인, 중국인들이 학살당했습니다. 대학살을 주도했던 일원인 ‘안와르 콩고’는 호화스러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가 자신의 ‘위대한 업적’을 영화로 만들자는 제안을 받습니다. 대학살의 리더였던 ‘안와르 콩고‘와 친구들은 시나리오를 쓰고 연기도 하며 자랑스럽게 살인의 재연에 몰두하게 됩니다.

 

 

<액트 오브 킬링>의 주인공인 안와르 콩고는 피해자의 꿈을 꾸고 괴로워하는 등, 양심의 가책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가 자신의 ‘업적’을 뻔뻔하게 자랑하기도 하는 이중적인 인물입니다. 극 중에서 그는 피해자를 어떻게 목 졸라 죽였는지를 신나서 설명하다가 노래를 좋아하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가 주인공인 이유는 그가 다른 가해자들과 달리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인데, 이 죄책감과 자기합리화의 공존이 죄책감을 느끼지만 끔찍한 죄악을 저지를 수 있는 인간의 악(惡)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시청자는 결국 결말에 가서 비참함과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대학살의 주범이 보이는 잠깐의 자기 연민이나 감상을 제대로 된 가책이나 반성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다큐멘터리는 업적으로 포장된 대학살을 재현하는 영화를 찍는 것을 취재하는 포맷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굉장히 몽환적이거나, 비현실적으로 표현되는 장면도 많습니다. 그러나 학살의 재현은 무서울 정도로 현실적으로 표현됩니다. 다양한 장르로 표현되는 피해와 가해의 변주는 안와르 콩고로 대변되는 학살자들의 분열적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액트 오브 킬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학살자들이 자신의 과거를 직접 영화로 만든다는 구상입니다. 대학살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학살범들이 직접 영화를 만들며 자신들의 과거를 영상이라는 객관적 매체를 통해 바라보게 되고, 외면해왔던 자신을 직접 마주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카메라는 그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분열을 집중해서 조명합니다.

 

다큐멘터리답지 않는 구상과 적극성이 돋보이는 것은 안와르 콩고가 자기 연민에 빠져 자기가 얼마나 무서운지 호소할 때, 화면 너머에 있던 감독이 인도네시아어로 던지는 한 마디입니다. “그때 고문당한 사람들은 훨씬 더 고통스러웠겠지요. 안와르씨는 영화란 걸 알지만 그들은 죽는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단순한 악이 아니라 악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악이 스스로를 그리는 자화상을 그린 영화 <액트 오브 킬링>, 꼭 한 번 시청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 <액트 오브 킬링> B tv 메뉴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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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시선(2015)


다음으로 소개해드릴 <액트 오브 킬링>의 2부와 같은 다큐멘터리 영화 <침묵의 시선>입니다. 2부작을 이루는 두 영화는 명백한 대비를 이룹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두 영화는, 인간의 악함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잡아냅니다.

 

<침묵의 시선>의 인물은 1965년 대학살 중에 유일하게 대중에게 죽음이 목격된 ‘람리’의 동생인 ‘아디’를 등장시킵니다. 숨죽여 살며 ‘람리’를 침묵하고 망각했지만 동생인 아디만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아디는 영화 속에서 50년 만에 형을 죽인 살인자를 찾아가 그때의 이야기를 묻게 되는데 가해자들은 당당하게, 심지어 자랑스럽게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증언합니다.


 

가해자를 마주하는 아디의 표정은 분노도 아니고, 슬픔도 아닌 비어있는 표정입니다. 가해자는 행동하고 연기하며, 피해자는 그저 바라보고, 표정이 없는 대비는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현실을 가혹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비춥니다.

 

아디와 가해자가 나누는 이야기보다 중요한 것은 말의 내용이 아니라 말이 오가는 상황의 맥락입니다. 서로를 노려보는 순간, 어떠한 질문에 대해 생긴 말과 말 사이의 단락에 감독을 집요할 정도로 집중합니다.

 

다큐멘터리는 일반적으로 단순 편집 외에 인위적인 편집을 잘 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런데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작품 속에서 배경음을 지우거나, 배경음을 넣거나 하는 등의 적극적인 개입을 합니다. 다이렉트 시네마 기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의도된 장면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실제 상황이나 모습을 설명 없이 바라보는 방식인데 이 작법은 다큐멘터리의 불문율처럼 여겨졌습니다. 이러한 불문율을 어긴 이 작법은 많은 이들에게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또한 <침묵의 시선>은 편집을 통한 은유로 장면과 심리를 다룹니다. 가해자가 시력 측정을 하며 빨간 안경을 쓰는 장면 등이 대표적인데, 공산당을 학살한 이들이 공산당을 상징하는 빨간 안경으로 시력 검사를 하며 “잘 보이는데?” “이상 없는데?”라고 말하는 모습은 바뀐 세상에 진실을 갖다 대도 차이가 없다고 우기는 가해자의 심리를 표현하는 요소입니다. 아디가 가해자의 안경을 바꿔주며 “왼쪽을 가려볼게요.”라고 하는 장면은 두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편집자와 관객은 은유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침묵의 시선>은 <액트 오브 킬링>에서 떠오른 질문에 대한 답변과 같은 영화입니다. 분노도 슬픔도 아닌 피해자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봅니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만나게 함으로써 침묵의 표정과 시선을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 <침묵의 시선> B tv 메뉴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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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보다 무서운 것은 인간이라는 말처럼, 현대사의 비극을 바라보는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시선은 인간의 악이라고 하는 두려움을 시청자들에게 선사합니다. 또한 개인을 따라가는 카메라는 종국에는 비극을 허용하는 강대국을 비롯한 세계의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인간의 악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시선이 인상적인 영화들입니다.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혁신적인 작법이 돋보이는 2부작 <액트 오브 킬링>과 <침묵의 시선>, B tv에서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 '영화당' B tv 메뉴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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