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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와 오스카를 휩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집중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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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브로드밴드 2016. 4. 11.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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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드디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5전 6기 끝에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전 세계 지도자들이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사람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수상소감을 말하다니! 살짝 준비한 티가 나지만, 이번 수상소감에는 그의 환경에 관한 관심이 배어있는데요, 1998년에 자기 이름을 딴 환경재단을 설립한 디카프리오는 2014년엔 유엔 기후변화정상회의에서 개막연설을 하기도 했죠? 그동안 오스카상을 받지 못한 서운함 대신 환경보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소감으로 밝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오늘은 환경운동가로서, 그리고 연기자로서 수많은 활동을 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작품들을 Blog 지기와 함께 만나보기로 해요.




1989 - 14살의 디카프리오 / 드라마에 출연하다 

디카프리오는 교육열이 대단한 어머니와 언더그라운드 만화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디카프리오가 한 살 때 이혼했는데, 어머니와 살게 된 디카프리오는 LA 빈민 지역을 떠돌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를 좋은 초등학교에 보내기 위해 어머니는 하루에 네 시간씩 운전했지만 디카프리오는 순순히 어머니의 뜻에 안 따랐다고 하네요. 하도 말썽을 많이 피워 ‘미친 꼬마’이거나 공부를 못해 ‘저능아 레오나르도’라고 불렸다고도 합니다. 그의 연예계 진출은 의붓형인 애덤 패러의 광고 촬영장에서 모델로 발탁되면서 시작되었는데요. 이후 14살이 되면서 개와 꼬마의 우정을 가족 드라마 <뉴 래시>에 출연하게 됩니다.


# 1991 - 16살의 디카프리오 / 영화 데뷔하다

괴물 영화 <크리터스 3>로 스크린에 데뷔한 디카프리오. 1986년에 1편이 나온 나름 인기 시리즈였는데 그가 출연한 3편도 수익을 올렸습니다. 이듬해에는 <야성녀 아이비>(1992)를 찍었는데요, 드류 베리모어가 팜므파탈 아이비로 나와 친구의 어머니를 죽이고 아버지와 연애한다는 막장 19금 영화였는데도, 디카프리오에겐 이 또한 즐거운 경험이었나 봅니다. “그 시절엔 쓰레기 같은 영화에 많이 출연했다”며 “어떤 역할에도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 점이 그의 남다른 성격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 1993 - 18살의 디카프리오 / 영화계를 놀래키다

<이 소년의 삶>에서 강압적인 새아빠 로버트 드 니로와 디카프리오는 심각한 싸움을 벌입니다. 손가락을 물어뜯고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말이죠! 열여덟 신출내기 디카프리오는 쉰을 바라보는 연기파 톱스타 로버트 드 니로 앞에서 결코 연기로 밀리지 않습니다. 영화 속 디카프리오는 진정 '10대 인간수소폭탄' 같아 보이는데요. 그는 영화 촬영 종료 이후 한 인터뷰에서 “(당시 연기력이나 유명세 등 모든 면에서 최고였던) 드 니로에게 지나치게 집중하지 않기로 했다”며 “그랬다가는 그의 연기에 흡수돼 버렸을 것”이라고 말했답니다.


1994 - 19살의 디카프리오 / 할리우드의 다크호스가 되다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그는 지체장애가 있는 어니 그레이프를 연기하는데, 진짜 장애가 있는 것처럼 실감 나는 연기를 펼칩니다. 각각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 손가락과 묘하게 뒤틀린 손목 놀림, 그리고 눈동자를 보면 그가 인물을 창조해내는 동물적 감각을 지녔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영화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며 오스카와 첫 인연을 맺게 됩니다.

■ 「길버트 그레이프」 보기 : 영화/시리즈 > 해외영화 > 드라마



# 1996 - 21살의 디카프리오 / 전 세계 여성의 로미오가 되다

바즈 루어만 감독의 영화를 보면 화려한 영상에 눈이 돌아갑니다. 그 감각이 디카프리오의 미모와 만나 화려하게 피어난 영화가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입니다. 소년에서 남자로 건너가는 중간계의 아름다운 생명체가 입만 열면 연서를 쏟아내니 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영화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했죠. 이후 루어만 감독과 디카프리오는 <위대한 개츠비>(2013)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 1997 - 22살의 디카프리오 / 타이타닉을 타다

2억 달러가 들어간 당대 최대 프로젝트 <타이타닉>의 주인공이 된 디카프리오. 뱃머리에서 연인이 두 팔을 벌리고 서는 장면을 모르는 사람은 아기들 빼고 없을 거라 보이는데요. 이 영화로 그는 지구적 스타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런데 정작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타이타닉 이후 나는 완전히 공허한 상태였다.

■ 「타이타닉」 보기 : 영화/시리즈 > 해외영화 > 로맨스



# 2002 - 27살의 디카프리오 / 스콜세지 감독을 만나다

<타이타닉> 이후 <아이언 마스크>(1998) <비치>(2000)를 찍었지만, 평단은 냉혹했습니다. 그가 인물만 반반한 배우가 아님을 다시 알려준 이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입니다. 19세기 뉴욕 뒷골목 인생들의 처절한 난투극인 <갱스 오브 뉴욕>을 계기로 그는 스콜세지 감독의 페르소나가 되는데요. <에비에이터>(2004) <셔터 아일랜드>(2010)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2013) 등을 줄줄이 함께 찍으며 이 모든 영화 속 디카프리오는 세상에서 제일 멋진 모습을 보이고, 스콜세지 감독은 마치 늑대조련사 같아 보입니다.

■ 「셔터 아일랜드」 보기 : 영화/시리즈 > 해외영화 > 공포스릴러


# 2007 - 32살의 디카프리오 / 사회적 발언을 하다 

그는 정치적 발언을 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습니다. <타이타닉> 이후 그는 환경운동을 시작하는데요. 1998년에 자기 이름을 딴 환경재단을 설립했고, 2004년 대선 땐 민주당의 존 케리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습니다. <블러드 다이아몬드>(2007)는 영화 버전의 사회적 발언이라 할 수 있는데요, 1999년 내전이 한창인 시에라리온을 배경으로 다이아몬드 이권에 눈멀어 내전에 돈줄을 대는 서구의 탐욕을 영화를 통해 폭로했습니다. 이 영화로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 「블러드 다이아몬드」 보기 : 영화/시리즈 > 가나다찾기 > 바



이제 40대 초반에 접어든 디카프리오! 40대가 되면서 그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무너지고 뒤틀린 남자가 되어, 동화 속 왕자가 아닌 삶의 등짐을 진 상처 입은 남자로 돌아왔습니다. 차기작 <데블 인 더 화이트 시티>에서는 무시무시한 연쇄 살인마 연기를 펼친다고 하는데요. 연기뿐만 아니라 환경운동가로서의 열정도 넘치는 이 남자, 디카프리오! 앞으로의 활약이 더욱 기대됩니다. 이상 Blog 지기였습니다. :)



* 위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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