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tv에서 독점 방영(VOD)을 시작한 <레전드 히어로 삼국전>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방영되자마자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고 놀라운 타깃 시청률을 보여주더니 “일본 콘텐츠에 뒤지지 않는다”거나 “특촬물의 불모지 한국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의미심장한 호평이 이어졌다. 중국과 합작해 제작비 70억 원을 투자하고 전문 영화인력이 대거 합류한 사실이 알려지며 더욱 화제를 모은 <레전드 히어로 삼국전>은 과연 어떤 작품일까.
글 | 김현수 · 사진 | 문와쳐 제공
#<삼국지>에서 시작됐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
무술도장 도원관에서 후계자 수련을 연마 중인 유비와 공손찬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가족같은 친구 사이다. 유비는 대책 없이 착하고 우유부단한 반면, 공손찬은 꼼꼼하고 악착같다. 궂은 일은 모두 공손찬의 몫인데 사부는 유비만 예뻐하는 것 같아 불만이 쌓여간다. 도장 운영하랴, 무술 수련하랴 바쁜 두 사람은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 서서와 사마의에 의해 ‘레전드 히어로’로 간택당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드림배틀’이란 게임에 참가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히어로가 되어 각자 자신의 꿈을 걸고 대결을 벌이게 된다. 신선과 영웅패는 인간이 되고 싶어서, 인간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드림배틀에 참여한다.
<레전드 히어로 삼국전>은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웅 서사다. 신선에 의해 영웅심이 투철하다고 판단된 사람들은 일종의 요정과 같은 존재인 영웅패와 힘을 합쳐 ‘레전드 히어로’가 된다. 영웅패는 인간을 군주로 모시면서 마음을 합쳐야 한다. 배틀에 참가하는 모든 히어로가 선한 의도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레 등장인물도 선악구도로 나뉘게 된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삼국지>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전재훈 감독과 지한솔 작가는 원작에서 등장 인물의 이름과 성격, 기본적인 인물 관계와 굵직한 사건 전개의 흐름만 따와 전혀 다른 세계와 이야기를 만들었다. 유비·관우·장비가 한 몸이 되어 히어로로 변신하거나 조조와 손책이 등장하는 등 별도로 설명이 필요 없는 <삼국지>의 인물들이 주인공이지만 이들의 관계가 반드시 원작과 똑같지는 않다.
중국과의 원활한 합작을 위해 <삼국지>라는 익숙한 원작을 빌려왔지만 제작진은 단순히 그대로 가져올 생각은 없었다. ‘영웅이 각성해서 세상을 구한다’는 전형적인 성장 드라마의 골격을 지닌 이 작품에서 주목할 것은 ‘드림배틀’이라는 설정이다. 드림배틀에 참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은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 유비는 자신을 친자식처럼 키워준 노식 사부와 친남매처럼 함께 자란 공손찬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도장의 후계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후계자가 돼 도장을 어떻게 이끌겠다는 목표는 사실 없다. 반면 공손찬은 이런 유비에 대한 막연한 질투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둘은 신선인 서서와 사마의에 의해 드림배틀에 참여할 수 있는 히어로가 된 다음 부터 자신이 제압한 상대는 소중한 꿈을 잃게 된다는 걸 깨닫고, 자신의 미래와 다른 이의 꿈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아이들의 눈높이를 의식해 이야기와 캐릭터를 단순하게 만들었지만 여러 갈등 속에서 얻는 깨달음의 크기는 어른들에게도 울림을 준다. 이전의 수많은 특촬물에선 찾아볼 수 없었던 탄탄한 이야기 구조는 <레전드 히어로 삼국전>의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
#유비·조조·손책의 파란만장 배틀 라이프
물론 <삼국지>의 기본골격마저 깡그리 사라진 건 아니다. 영웅패인 관우와 장비를 모두 소유하게 된 유비에 이어 반드시 악을 처단해야 한다고 믿는 경찰 출신의 조조가 강력한 다크 히어로의 존재감을 과 시하며 등장한다. 그리고 천하제일의 무인을 꿈꾸며 세상을 주유하는 강동의 호랑이 손책이 합류해 3강 구도를 완성한다. 세 사람의 관계는 <레전드 히어로 삼국전>의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유비는 드림배틀을 주관하는 신선에 의해 임명되는 인물이다. 반면 조조는 스스로 이름을 바꾸고 영웅의 삶을 선택하는 인물이다. 손책은 태어날 때부터 영웅의 풍모를 지닌 인물이다. 세 사람은 전혀 다른 경로로 영웅의 삶을 살면서 저마다 다른 목표를 갖게 된다. 또 영웅으로서의 의무 또한 각자 다른 방식으로 풀어나가게 된다. 제갈량 역시 갈등의 한 축으로 등장할 예정이다.
오래전부터 특촬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품어왔던 전재훈 감독과 지한솔 작가, 박한 디자이너에게 <삼국지>는 최적의 콘텐츠였다. 액션 활극으로서의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나름의 도덕적 가치를 내세 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반이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삼국지>는 뭐든 할 수 있는 것이 열려 있는 원작이었다. 거기에 더해 특촬물로서의 사업 가능성도 충분했다. 2010년대 들어 때마침 중국에서 특촬물 수요가 급성장하는 상황에서 <삼국지>는 아시아 전역에서 충분히 소비될 수 있는 안정적인 원작이었다. 또한 원작 훼손에 대한 까다로운 심의절차가 있는 중국의 특성상, 실제 역사가 아닌 설정만 가져와 현 대적으로 각색하기 용이하다는 것도 강점이었다.
#로드맵까지 준비했으니 기다려라, 완구시장!
특촬물이 투자를 유치하고 제작에 들어가려면 완구시장에서의 경쟁력이 필수다. “재미있는 플롯을 기본으로 하되, 사건전개는 철저히 상업적 이슈와 연결된다. 처음에 어떤 장난감이 발매되고 몇 주 뒤 어 떤 장난감이 나오는지 전체 완구 발매 로드맵이 이야기에 포함되어 야 한다”는 지한솔 작가의 말은 작품과 시장 가능성을 동시에 염두 에 둬야 하는 특촬물의 철저한 사전기획 필요성을 상기시킨다. 수십 편의 영화를 제작하며 영상시장 전반에 걸쳐 잔뼈가 굵은 제작사 문와쳐와 전문 CG업체, 김정민 무술감독이 이끄는 국내 최고의 무술팀 ‘열혈남아’ 등 국내 영화인력이 제작에 합류했고 중국 파트너사인 차이나 필름 애니메이션과의 합작이 성사되며 중국이라는 드넓은 시장 의 문이 열렸다. 이들이 모두 지금의 <레전드 히어로 삼국전>을 탄생 시킨 주역이다.
문와쳐 윤창업 대표는 “한국 최고의 특촬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사명이 있었다. 한국에서 만들기에는 너무 어려운 작품인데 우리가 엉망으로 만들어놓으면 누가 뒤이어 이 시장에 뛰어들 생각을 하겠는가. 영화를 만들던 인력들이라 더 잘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단순히 돈만 많이 들이면 만들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다. 오랜 시간 장르에 대한 애정을 갖지 않았다면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아무도 쉽게 도전할 수 없었던 분야의 시장을 개척하는 도전정신이 만들어낸 <레전드 히어로 삼국전>의 다음 시즌이 또 이어지기를 바란다면, B tv에서 독점 방영하는 VOD를 아이와 함께 보자, 두 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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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했습니다. *
* 본 포스팅의 원본 글은 B tv 매거진 6월호(링크)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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