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24 10:26

나홍진 감독이 신작 <곡성>을 들고 6년 만에 돌아왔다. <곡성>은 촬영 전부터 시나리오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이야기라고 영화인들 사이에서 많은 화제를 모았다. 드디어 공개된 <곡성>은 역시나 기대했던 대로다. 나홍진 감독은 자신의 장기인 스릴러 장치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한국영화에서 쉽게 시도되지 않았던 오컬트라는 장르를 과감하게 돌파했고, 선악의 구도가 분명했던 전작과 달리 이번에는 악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영화 이야기와 함께 <곡성>으로 첫 주연을 맡은 배우 곽도원을 만나보자. 

글 | 김성훈 · 사진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추격자> <황해> 그리고 <곡성> 

“모든 살인은 십자가 아래서, 즉 신의 발밑에서 벌어진다고 생각했다.” 데뷔작 <추격자> 개봉 후 열린 시사회에서 나홍진 감독이 “영화에 등장하는 기독교적인 요소들에 대한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한 관객의 질문에 대해 내놓은 대답이다. 그의 말을 빌면 데뷔작 <추격자>와 두 번째 영화 <황해>는 신의 발밑에서 가해자(<추격자>의 지영민(하정우), <황해>의 면가(김윤석)와 구남(하정우))가 벌인 폭력과 살인으로 긴장감을 구축해 일직선으로 내달린 장르영화였다. 두 영화 속 인물의 목표와 욕망 또한 분명했다. <추격자>의 중호(김윤석)는 연쇄살인범 영민을 잡으려고 하고, 영민은 그의 추격을 필사적으로 따돌리려고 한다. <황해>의 구남은 빚을 갚고 한국에 일하러 간 아내를 만나러 가기 위해 청부살해 제안을 받아들인다. 면가는 살인자 누명을 쓴 채 도망자 신세가 된 구남을 죽이기 위해 그를 쫓는다. 하지만 <곡성>은 피해자가 그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체가 불분명한 폭력(혹은 악)의 근원을 찾아나서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앞의 두 편과 다르다. 



#폭력의 심연을 들여다보다 

전남 곡성. 살인, 화재, 자살 등 온갖 사건이 연달아 터진다. 희생자들의 공통점 은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다는 사실이다. 또 마을의 한 남자는 산에서 약초를 캐다가 팬티만 달랑 걸친 일본 노인(쿠니무라 준)이 산짐승의 내장을 파먹는 걸 우연히 목격하고 기겁한다. 여러 사건사고 때문에 마을은 뒤숭숭해진다. 버섯을 잘 못 먹어 두드러기가 난 것이라느니, 외지인(일본 노인)이 마을에 나타나면서 벌어 진 일이라느니 소문이 무성하다. 자살로 죽은 여자의 집 앞을 지키던 경찰 종구(곽도원)는 사건을 목격했다는 여자 무명(천우희)을 만난다. 무명은 “일본 노인이 귀신인데, 그놈이 자꾸 (사람을) 쳐다보는 건 피를 말려 죽이려는 목적”이라고 귀띔한다. 그때 종구의 딸 효진(김환희)의 몸에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한다. 종구는 동료경찰 성복, 그의 조카인 이삼과 함께 일본 노인을 찾아가 마을을 떠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경고하고 딸을 치료하기 위해 무당 일광(황정민)을 부른다. 

선악구도가 분명한 <추격자> <황해>와 달리 나홍진 감독이 6년 만에 내놓은 <곡성>은 악의 정체가 불문명하다. ‘슬피 우는 소리’(哭聲)라는 영화 제목처럼 피해자들의 곡소리는 영화 내내 끊이지 않는다. 반면 가해자는 이야기의 전면에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종구가 일본 노인을 찾아 가는 것도 그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있거나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라서가 아니다. ‘외지인이 마을에 오면서 뒤숭숭한 일들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의심하다가 역시 정체가 불분명한 무명의 확인되지 않은 말을 믿고 그를 용의자로 지목한 것이다. 마을에 도는 소문과 그 소문으로 인한 사람들의 의심이 서스펜스를 겹겹이 구축 하며 서사를 힘껏 끌고 간다. 

나홍진 감독이 <곡성>이라는 영화를 만들게 된 건 “피해자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 라고 한다. 시사회가 끝난 뒤 마련된 기자간담회에서 나홍진 감독은 “피해자가 어떤 이유로 피해를 입는 건가. 범죄자를 길에서 우연히 만난 게 이유일 수는 없지 않나. 그 원인을 찾고 싶었고, 그러다보니 이야기가 현실에 국한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외지인과 왕래가 적은 작은 마을 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피해자 입장에서 풀어낸다는 점에서 스타일은 다르지만 샘 페킨파 감독의 <어둠의 표적>(1971)이나 임권택 감독의 <안개마을>(1982) 같은 작품이 떠오른다. 또 폭력의 근원을 찾는 영화라는 점에서 미하엘 하케네 감독의 <하얀 리본>(2009)이 연상되기도 한다. <하얀 리본>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기이한 사건을 통해 단순하게 해석 할 수 없는 폭력의 인류사를 조망한 작품이다.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게 가능한가 

“그들은 놀라고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유령을 보고 있는 줄로 생각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당황하느냐?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을 품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너희가 보다시피 나는 살과 뼈가 있다” 

<곡성>의 오프닝 시퀀스에 인용되는 누가복음 24장 37~39절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 앞에 다시 나타나는 대목인데, 감독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됐는지 이해하는 힌트가 되어준다.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했을 때 제자들은 당연히 믿지 않았다. 제자들이 예수에게 기적을 보여달라고 요구한 것도 그래서다. <곡성>은 만약 폭력과 살인의 근원이 현실에 없다고 여긴다면 그건 신의 장난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나 다름없고, 현실에는 완전한 선도 악도 없으니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 쉽게 믿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듯하다. 본격적인 오컬트 장르로 전환되는 중반부터 영화는 좀더 직접적인 질문을 던진다. 대체 초월적인 존재의 정체는 무엇인가, 실제로 신은 존재하긴 하는 걸까. 현실에서 선악을 정확하게 구분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 사건의 갈피가 제대로 잡히지 않고 의사조차 딸의 증상을 해결하지 못할 때 ‘경찰’인 종구는 무당, 부제와 신부 등 종교에 도움을 구한다. 십자가, 못 박힌 그림, 교회 등 기독교와 관련한 암시가 드문드문 등장했던 <추격자>에 비하면 <곡성>은 종교적 장치를 서사의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이 눈에 띈다. 마을의 불운을 해결하기 위해 저마다 그럴듯한 의견을 내놓지만 어떤 종교도 해법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한 시퀀스 안에서 현실과 꿈의 경계를 허무는 순간이 여럿 등장하는 점도 흥미롭다. 가령 일본 노인이 위협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는 시퀀스 다음에는 항상 종구가 악몽을 꾸다가 깨는 시퀀스가 연결된다. 종구가 무명을 처음 만나 살인사건 목격담을 들을 때, 종구가 자리를 잠시 비운 사이 무명은 사라지고 모든 건 꿈처럼 아득하다. 그런데 나홍진 감독이 이렇게 던진 미끼를 물고 나면 그 장면들은 웬만한 현실보다 훨씬 실감나게 다가온다. 사람같은 듯 사람같지 않은 동선으로 화면에 배치된 무명을 유심히 지켜보면 영화 보는 재미가 배가될 것이다. 



#'작가' 나홍진의 탄생 

<곡성>은 완성도 높은 스릴러 영화 <추격자>와 스릴러라는 장르를 통해 한국사회의 씁쓸한 이면을 야심만만하게 드러낸 <황해>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작품이다. 자신의 장기인 스릴러 문법을 활용해 긴장감을 구축하고 그것을 맥거핀 삼아 폭력의 근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간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나홍진 감독의 작가적 야심과 무시무시한 고집의 결정체라 할 것이다. 덕분에 기대 이상의 나홍진표 영화가 탄생했다. 스릴러의 세공사이자 시네아스트(작가)로서 한 발짝 전진한 나홍진을 목도하는 순간이다.  



#혹독하지만 즐거웠던 첫 주연 촬영 <곡성>의 배우 곽도원 

나홍진 감독 영화에 으레 나오는, 

향해야 할 방향이 어딘지도 모른 채 엉뚱한 자취만 

좇게 되는 주인공으로 곽도원이 낙점됐다. 

그가 연기한 종구는 딸을 둔 아버지이자 시골 마을의 

경찰이다. 마치 여행의 가이드처럼 곽도원은 

알 수 없는 사건 속으로 슬금슬금 관객을 이끈다.

글 | 윤혜지 · 사진 | 오계옥   


시나리오를 받아보고는 어땠나. 아휴, (웃음) 나홍진 감독 영화가 원래 좀 세잖나. 그렇지만 <곡성>은 폭력적인 영화가 절대 아니다. (웃음) <곡성>을 보고 관객이 두려움을 느낀다면 그것이 일상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생생함을 담고 있기 때문일거다. 살면서 물지 말아야 하는 미끼를 덥석 물 때가 있잖나. 있어선 안 되는 일들을 당하게 됐을 때 그 억울함과 두려움을 어떤 방식으로 드러낼 수 있을까. 연기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도 그런 거였다. 실체가 잡히지 않는 두려움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것 말이다. 육체적으로도 무척 고되었지만 정신은 연기를 시작한 후로 가장 맑은 때가 아니었나 싶다. 


종구는 주변으로부터 잘 치이는 소심한 인물인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변화가 드라마틱하다. 아버지 역할도 드물었잖나. 일단 나도, 나홍진 감독도 애가 없어서 아이를 둔 스탭들에게 ‘딸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 것 같냐’고 물어보고 다녔다. 다들 선뜻 대답은 못하고 ‘야… 글쎄다. 하아…’ 정도의 반응 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그게 답이었다. 그 막연한 눈빛과 한숨에 종구의 모든 게 있었다. 


인물의 기운이 팽팽하게 맞서는 영화다. 쿠니무라 준, 황정민 등 관록 있는 배우들과 부딪치는 가운데 균형을 잘 잡아야 했을 텐데. 연기 잘하는 배우랑 하면 오히려 편하다. 내가 분위기를 만들 필요 없이 반응만 하면 된다. <곡성> 크랭크인하고 한 달쯤 뒤부터가 (황)정민이 형 촬영이었는데 형 없는 초반 한 달이 너무 힘들었다. 형이 합류한 뒤의 기분? 아픈 부모를 모시는 집의 막내로서 근근이 집안을 꾸려가는데 서울에서 일하는 큰형이 선물을 잔뜩 사들고 돌아 와서는 ‘그간 고생했다. 이젠 내가 집안을 이끄마’라고 말하는 것 같더라. (웃음) 


일본인 배우인 쿠니무라 준과는 어땠나. 외국인 배우와 연기하는 것도 처음이다. 할 말이 뭐 있겠나. 참… ‘고급진’ 연기를 하셨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데 카메라 앞에서의 존재감이 엄청났다. 그 어른은 호흡부터가 다르더라. 대퇴부가 좋지 않아서 평소 걸음이 불편하신데 카메라만 돌아가면 그 험한 산길을 어찌 그렇게 빠르게 뛰시는지 모르겠다. 하도 육체적으로 힘든 연기를 하시니까 매일 근육이 경직되고 통증이 있었다고 했다. 촬영 마칠 때마다 아미노산을 30알씩 드시면서 나까지 늘 챙겨주시더라. 카메라 밖에선 참 자상하셨는데 “배우는 늘 착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해주신 게 기억난다. 


현장에 놓인 동물 사체나 벌레 등 여러 소품이 대부분 진짜였다고 들었다. 어떻게 버틴 건가. 미술팀과 소품팀의 노고에 대단히 감사드린다. (웃음) 그 역겨운 것들을 모두 리얼하게 마련해주셨다. 썩은 내가 아주…. 아휴…. 죽은 닭을 사다가 방 안에 방치해둔다든가…. 덕분에 나는 반응만 하면 되었다. 외지인(쿠니무라 준)의 집에 찾아간 종구가 방문을 열어보고는 “이런, 씨벌놈…” 하고 뇌까리잖나. 그거 연기 아니다. (웃음) 그렇지만 그런 현장에 대해 엄살을 떨 일이 아니다. 장난처럼 말했지만 실은 배우로서 최상으로 연기할 환경을 만들어준 걸 겸허히 받아들이고 고마워하고 있다. 



* 위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했습니다. *

* 본 포스팅의 원본 글은 B tv 매거진 6월호(링크)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


Posted by SK브로드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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