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11 16:24

기이할 정도로 흥행한 영화가 있다. 대만 영화 <나의 소녀시대>다. 지난해 대만에서 개봉했을 때는 대만 박스오피스를 갈아치웠고,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첫 소개됐을 때도 화제를 모았다. 영화제 상영 전 이미 어둠의 경로를 통해 영화를 본 사람도 상당히 많았다. 불법 다운로드를 통해 알음알음 먼저 소문이 퍼지고, 국내에 정식 개봉해 흥행한 <말할 수 없는 비밀>(2007)의 사례와 상당 히 비슷하다(<말할 수 없는 비밀>의 누적관객수는 9만 9106명이다). 두 작품 모두 청소년 시절의 첫사랑을 아련하게 그려냈다. 

글 | 이화정·윤혜지 



#왜 ‘대만’과 ‘청춘’인가 

<5월 1일>(2016)

비슷한 유형의 대만영화들을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남색대문>(2002), <영원한 여름>(2006), <청설>(2009), <그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 <점프 아쉰>(2011)…. 일련의 영화들엔 공통된 요소들이 있다. 교복 입은 학생들, 예민한 시선, 조심스럽고 섬세한 감정묘사, 주인공들의 말간 얼굴, 그리고 어떤 예쁜 것들. 그것이 주인공의 깨끗한 얼굴이든, 낭만적인 상황이든, 파릇파릇한 풍경이 든 대만의 청춘영화엔 반드시 ‘예쁜 것’이 있어야 한다. 

<청설>(2009)

대만에서 이처럼 꾸준하게 ‘예쁜 청춘영화’가 제작·소비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먼저 대만 영화산업 안에서 청춘영화는 외화와 경쟁할 수 있을 만한 안정적인 상업영화 장르이자 특정한 관객 층과 팬덤을 지속적으로 형성해낼 수 있는 영역이다. 1970년대 급속한 경제 발전을 거치며 대만 정부는 자국 콘텐츠 개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자국영화 제작지원을 하고 검열도 완화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광음적고사>(1982)와 <샌드위치맨>(1983)으로 촉발된 대만 뉴웨이브의 기수들인 에드워드 양, 허우샤오시엔 같은 작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담담한 현실 묘사, 사실적인 롱테이크 촬영, 동시녹음, 비전문배우의 적극적 기용 등을 통해 대만의 사회와 역사를 반추하는 예민한 시선의 걸작들이 이때 다수 탄생했다. 하지만 이들의 뒤를 이을 만한 인상적인 작가가 등장하지 않았고, 앞서 언급한 감독들은 대만 영화산업의 상업적 측면과는 무관했기에 대만의 자국영화 시장은 침체될 수밖에 없었다. 2000년대 이 후부터는 할리우드 영화들이 시장을 잠식해 자국영화 제작환경은 더욱 위축됐고 소자본·소규모로 짧은 기간에 큰 위험 없이 제작할 수 있는 상업영화들이 꾸준히 만들어졌다. 대만 영화산업은 긴 암중모색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나의 소녀시대>

또한 청춘영화는 콘텐츠 구매력이 높은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이후부터 2000년대 사이에 태어난 세대)가 무난히 선호할 만한 타입의 영화다. 대만의 밀레니얼 세대는 일본의 순정만화와 한국의 로맨스 드라마를 고루 즐겨온 데다 영화를 익숙한 엔터테인먼트로 받아들이고 있는 세대다. 또 대만은 아이돌이나 젊은 배우가 출연해 로맨스를 펼치는 ‘우상극(偶像剧)’이 주류 장르로 안착한 지 오래다. 대개 우상극의 남자주인공들은 (<나의 소녀시대>의 쉬타이 위처럼) 겉으론 차가워 보이지만 과거의 상처로 인해 잠시 변한 것 뿐이고 그 본질은 선하고 다정해 여자주인공의 헌신과 사랑에 힘 입어 다시 본래의 모습을 찾는 인물들이다. 대만 우상극의 대표 캐릭터가 일본 만화 <꽃보다 남자>를 드라마화한 <유성화원>(2002) 의 따오밍스(언승욱)인데, <나의 소녀시대>에서 쉬타이위의 성인 역을 언승욱이 연기한 것은 그래서 더욱 인상적이다. 우상극이 드라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탓에 나이든 배우들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좁아질 수밖에 없고, 대만의 경력 있는 배우들은 대개 중국으로 넘어가 활동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사소천왕’(대만의 사대천 왕) 금성무, 임지령, 오기륭, 소유붕과 현재 중국 본토에서 가장 활발히 드라마를 찍고 있는 배우 중 하나인 곽건화가 대표적 사례다. 젊은 배우는 많은데 나이든 배우가 없으니 자연히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자꾸만 청춘영화, 청춘드라마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불안한 현실에서 미화되는 과거 

현재 대만 청년들은 ‘22K 세대’라 불린다. 우리나라의 ‘88만원 세대’처럼, 대졸 초임이 2만2천 대만달러(79만 원)에 불과한 청년세대를 일컫는 표현이다. 대만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경제성장률 도 저조하고, 청년실업률은 나날이 치솟고 있다. ‘티끌 모아 티끌’이 라고 누가 말했던가. 돈을 모아봤자 풍요로운 미래가 오리란 보장이 없으니 눈앞의 작은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겠다는 풍조가 한국 과 대만에 퍼지고 있다. 대만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든 신조어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널리 쓰이게 된 것도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그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

그래서 청년들에겐, 우리에겐 망상이 필요하다. 현실에 대한 고민 없이 활기 넘치는 일상을 흘려보냈던 ‘그때 그 시절’이 그래서 그리운 것이다. 물론 그 시절이 실제로 존재했느냐는 중요치 않다. 지금 우리 머릿속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미화돼 대리 만족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미망(未忘)은 그 자체로 청춘영화가 갖는 최고의 미덕이다. <나의 소녀시대>에서 관객이 감정이입을 할 주인공 린전신에겐 모든 환상이 실재한다. 안경만 벗어도 귀여워지는 외모, 우상처럼 따르는 ‘오빠’, 매너 좋은 남학우와 발랄하고 다정한 친구들, 사춘기 소녀의 ‘덕질’과 변덕스러운 마음까지 모두 이해해주는 잘생기고 똑똑한 첫사랑 남자애까지. 흥행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 게다. 

한겨울에도 영상 10도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는 온난한 기후 덕에 대만의 풍광은 사시사철 푸르다. 비 가 자주, 많이 오기 때문에 날씨도 무척 변덕스럽다. 마치 십대 시절의 우리 마음처럼. 대만 청춘영화의 청량하고 치기 어린 인물들은 이런 배경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산한 가을과 시린 겨울이 없는 대만이 아니라면 어느 곳에서 이토록 화사하고 사랑스러운 것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 



#아시아가 주목한 만인의 첫사랑, <나의 소녀시대> 배우 왕대륙
누구는 에릭이, 또 누구는 양조위가 보인다고 했다. 또 다른 누구는 이병헌을, 또 누구는 마쓰모토 준을 말했다. 유덕화나 주성치를 봤다고 하는 사람들도 만났다. 언급한 모든 사람이 서로 닮지 않았는데, 희한하게도 1991년생인 배우 왕대륙은 1990년대 청춘 스타들 모두의 요소를 장착한 것처럼 보인다. 싸움은 전교 1등, <천장지구>(1990)의 유덕화마냥 폼 잡고 오토바이를 타고 여자 앞에 딱 멈춰서는, 거들먹거리는 스타일이 몸에 밴 <나의 소녀시대> 속 쉬타이위(왕대륙). 다른 남자를 좋아하는 린전신(송운화)을 두고, 속마음을 말하지 못해 괴롭힘으로 대신하는, 사랑에는 유독 서툰 남자다. 우리가 각자 기억하는 첫사랑의 만 가지 형상을 하고, 마음속 지진을 일으키며 나타난 남자, 스물다섯 살의 청년 왕대륙을 만났다. 
글 | 이화정 · 사진 | 손홍주 

<나의 소녀시대>는 한국에서 개봉한 대만영화 중 최고 스코어를 기록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에서 상영됐는데, 그때 이미 한국 관객의 열기가 뜨겁다는 걸 느꼈다. 싱가포르에서는 그냥 웃고 좋 아한 정도였는데 한국에선 정말 감동받아서 눈물 흘리는 분도 있고, 반응이 좀 달랐다. 한국 관객이 대만에서 제작되는 첫사랑 멜로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 


1990년대 청춘 스타로 각광받았던 유덕화가 이 영화의 제작자로 참여했다. 아버지 세대라고 해도 과 언이 아닌데, 그런 정서를 연기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맞다. 그런데도 대본을 처음 봤을 때, 두 번째 봤을 때 모두 다 울었다. 디테일한 요 소들은 과거의 일이지만 사랑은 시대가 달라진다 고 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누군 가를 조건 없이 사랑하는 그런 첫사랑을 경험했었 다. 보편적인 정서라 연기하는 데 특별히 어렵지는 않았다. 

오디션 당시, 린전신을 놀리는 장면이 너무 능숙해서 캐스팅됐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쉬타이위 역할이 아니라 린전신이 좋아하는 오우양(이옥새) 역할이 주어졌다. 그런데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감독님이 내 코믹한 성격을 보고 쉬타이위 역을 해볼 생각이 없냐고 제안하셨다. 그렇게 주연이 되었다. 

지금 팬들이 열광하는 쉬타이위의 매력적인 모습이 그것 아닌가. 자신만만하고 장난기 많고 코믹한 남자. 그만큼 왕대륙 본인의 모습과 닮았다는 이야기다.
나도 평범한 사람이다. 맨날 공 차러 다니고 연애도 많이하고.(웃음) 워낙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다. 쉬타이위는 린전신을 못 살게 굴지만 처음부터 린전신을 좋아했다. 처음엔 본인도 자기 마음을 몰라 잘해주지 않다가 나중에 진심으로 대하는 진지한 남자가 되어간다. 매 장면 70%는 나 자신의 모습에 가깝고, 나머지는 캐릭터를 어떻게 할지 다 같이 고민해 만들어갔다. 

린전신에게 결혼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좋아했던 유덕화가 있듯이, 당신에게도 그런 대상이 있었을 것 같다.
나는 원빈이 참 좋다. (웃음) <아저씨>(2010) 를 보고 완전히 반했다. (원빈이 드라마 <꼭지>에서 아주 절절한 첫사랑 연기를 했는데, 쉬타이위와도 비슷했다고 하자) 정말인가! 원빈을 실제로 보니까 어떻던가. (원빈만큼 당신도 멋있다고 했더니 그건 믿지 못하겠다는 듯 특유의 익살스런 표정을 지 어 보인다) 만약 <아저씨>를 만든 감독이나 그 팀 이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일이 있어서 나에게도 같 이 하자고 한다면 개런티 없이 꼭 참여하고 싶다. 영화에 출연한 유덕화도 물론 좋아하는 배우다. 엄청나게 멋지지 않나. 그런데 영화에서 유덕화 배우가 모티브가 돼서 그렇지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주성치다. 나의 롤모델이고 그렇게 되고 싶다. 촬영할 때 유덕화가 온다고 해서 매우 기뻤는데, 만약 주성치가 온다고 했다면 좋아서 미쳐 막 뛰어다녔을 것 같다. 그 차이다. (웃음) 

대만 내에서도 <나의 소녀시대>의 인기가 상당했다. 대만영화의 흥행 역사를 새로 쓴 작품인데, 이 작품 이후 배우로서의 입지도 달라졌을 것 같다. 뭣보다 작품 선택에서 영향력이 생겼을 텐데.
예전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감독님이 뭘 하라고 하면 그냥 해야 하는 거고 내 목소리를 낼 기회 가 없었다. 지금은 말 그대로 ‘떴으니까’ 하고 싶은 걸 많이 할 수 있다. 현재 성룡과 함께하는 <철도비호>(1940년대 초반 중국 철도노동자들이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민중을 돕는 코믹 액션물)에 참여하고, 장이모 감독이 감제로 참여한 <28세 미성년>에 특별출연하고 있다. 중국에서 촬영 중인 영화 <교주전>은 당칠 공자의 웹소설 <화서인>을 각색한 무협 판타지물인데, 극중에서 소매치기 역으로 나온다. 아직 촬영이 한 달쯤 남아 있어서, 한국 일정이 끝나면 곧바로 촬영장으로 가야 한다. 한국에 다시 오고 싶다. 그때는 팬들과 더 많은 시간을 여유롭게 보냈으면 좋겠다. 



* 위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했습니다. *

* 본 포스팅의 원본 글은 B tv 매거진 7월호(링크)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




Posted by SK브로드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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