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01 15:49

줄리아 로버츠와 니콜 키드먼을 잇는 ‘은막의 여신’ 후보군 가운데 여러분은 누가 우리시대 연기의 여신이라고 믿는가. 지성과 아름다움, 연기력에 영적인 아우라까지 뿜어내는 배우 가운데 샤를리즈 테론이 단연 우뚝하다. 조프리발레단 무용수로 발레리나의 삶을 꿈꿨던 그녀는 할리우드에 입성해 말 없는 금발미녀, 즉 바비인형 역을 도맡았다. 균형 잡힌 몸매와 큰 키, 수려한 외모를 갖춘 그녀가 <플레이보이>지 누드모델 이력을 가진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오히려 대중이 놀란 건 <몬스터>(2003)의 괴물 같은 여자, 연쇄살인범 아일린 워노스를 연기하는 샤를리즈 테론이었다. 이후 발레로 다져진 몸과 불안한 듯 흔들리는 눈동자로 냉혹한 살인병기 이온 플럭스에 생명력을 불어넣더니,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나 영화 역사상 가장 근사한 여전사로 변신해 권력자의 뒤통수를 치고 인간해방을 선언했다(<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학대받는 어린이와 청소년,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동물 등 세상의 힘 없고 약한 존재에 귀를 기울이고 목소리를 내는 그녀는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결코 타협하거나 멈추지 않는 진정한 전사다.

글 | 김아리 자유기고가


 

#19살의 테론, 할리우드에 입성하다(1994)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난 테론은 15살 때 알코올중독이자 가정폭력이 심했던 아빠가 엄마를 공격했다가 엄마가 쏜 총에 맞아 죽는 사건을 겪는다. 테론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어릴 적 그런 일을 겪은 것이 나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정신적으로 성숙시켰던 것 같다”고 밝혔다. 부상으로 발레리나의 꿈을 접고 19살 때 일자리를 찾아 LA로 갔는데, 은행에서 직원과 다투는 모습을 본 할리우드의 한 에이전트가 명함을 건네면서 배우 인생이 시작됐다.

 


#23살의 테론, 관능미인이 되다(1998)

B급 영화에 대사 없이 3초간 나오는 역으로 데뷔한 후 숱한 역을 맡았지만, 예쁘고 말 없는 배역들로 초기 필모그래피가 채워졌다. 우디 앨런 감독의 <셀러브리티>에서 늘씬하고 황홀한 슈퍼모델로 등장한 샤를리즈 테론이야말로 당시 할리우드가 그녀에게 원하던 전부였다. 파티의 모든 남자들을 미치게 하는 관능적인 미인 말이다. “내 모든 것들이 에로틱한 쾌락을 주죠”라는 그녀의 말에 우리의 남자주인공은 그저 숨이 멎을 수밖에.

 


#28살의 테론, 진가를 발휘하다(2003)

미국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범 아일린 워노스의 실화를 영화화한 <몬스터>에서 테론은 아일린 워노스를 연기하기 위해 14kg을 찌우고 렌즈와 틀니를 착용하는 등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났다. 이듬해 오스카와 골든글로브 등 10여 개의 트로피를 휩쓸며 아프리카 출신 최초의 아카데미상 수상자이자, 킴 베이싱어 이후 두 번째 플레이보이 누드모델 출신 아카데미상 수상자가 됐을 뿐 아니라, 천만 달러의 출연료를 받는 특급 배우로 등극했다.

 


#30살의 테론, 두 번째 오스카 후보가 되다(2005)

<노스 컨츄리>에서 테론은 험한 광산노동과 그보다 더 험한 남성 직장동료의 폭력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하면서도 지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거대한 광산회사 편을 드는 변호사의 날카로운 질문에 “당신도 법률회사에 들어가기 전에 병원에서 다리를 벌리고 임신 여부 검사를 받았느냐”고 되받아치는 연기에선 품위와 굳은 심지와 지성의 조화가 느껴진다. 이 작품으로 두 번째 오스카 후보에 올랐다.

 


#30살의 테론, 독보적인 여전사의 탄생(2005)

이온 플럭스는 이상적인 미래사회 ‘브레그나’의 지도자인 트레버 굿차일드를 암살하는 임무를 맡는다. 살인병기로 길러진 그녀가 임무에 의문을 품고 자기의지대로 움직이면서 완벽해 보이던 세상의 균열과 거짓이 드러난다. 캐린 쿠사마 감독은 “육체적인 힘과 우아함이 넘치는 배우라야 했는데 그녀는 12년간 발레로 다진 몸과 동작으로 완벽하게 소화했다”며 극찬했다.

 


#33살의 테론, 약자의 아이콘이 되다(2008)

“쉽사리 목소리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싸우라”고 어머니는 당부했고, 테론은 여성과 동성애자, 에이즈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청소년, 폭력에 방치되는 아동, 동물의 생존권을 위해 싸웠다. 2008년 하버드대학은 차가운 지성과 뜨거운 심장을 가진 그녀를 ‘올해의 여성’으로 선정했다. 

 


#39살의 테론, 퓨리오사 사령관이 되다(2014)

사령관 퓨리오사는 테론의 전투력을 정점까지 끌어올린 캐릭터다. 남성들의 사막에서 삭발을 하고 자동차 기름으로 얼굴을 문질러 여성성을 지운 채 동료들을 이끌고 자신이 태어난 어머니의 땅으로 되돌아가려 한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페미니즘 영화인지 묻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테론은 쿨한 말투로 “조지 밀러 감독은 여성도 남성만큼 복합적이고 흥미로운 존재라는 걸 이해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답했다.

 


#40살의 테론, 대체 불가능한 매력을 뽐내다(2015)

백설공주 이야기를 비튼 판타지 영화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의 속편 <헌츠맨: 윈터스 워>에서 테론은 절대악 이블 퀸을 연기한다. 세상을 삼켜버릴 듯한 그녀의 강렬한 카리스마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한편 퓨리오사를 다시 보고 싶은 이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있다. <매드맥스>와 더불어 자동차 액션 시리즈의 쌍두마차로 불리는 <분노의 질주> 8편에 테론이 출연한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라는 영화로 제작자로도 데뷔할 예정이다.

 



* 위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했습니다. *

* 본 포스팅의 원본 글은 B tv 매거진 6월호(링크)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


Posted by SK브로드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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