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사랑과 인생 그리고 악의 근원에 대하여 말하는 세 편의 찌인한 애니메이션을 소개한다.
# 사랑에 대하여 <치코와 리타>
미국에서 쿠바 재즈가 막 유행하기 시작하던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애니메이션. 감독 겸 일러스트레이터 하비에르 마리스칼의 독특한 그림체를 감상하느라 일단 눈이 즐겁고 사운드 트랙을 맡은 베보 발데스의 피아노 선율 덕분에 귀도 즐겁다. 아무튼, 사랑 이야기다. 그것도 베드신과 올누드까지 나오는 어른의 사랑 이야기.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치코라는 재즈 피아니스트와 리타라는 재즈 보컬리스트의 불같은 사랑과 이별과 사랑과 이별과 사랑과 이별과 사랑과…… 여기에 도돌이표 한 열 개 달면 된다. 그러면 이 변덕스러운 예술가 커플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으리라.
혹자는 두 사람의 즉흥적인 감정선이나 남미식 연애관이 와 닿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우리가 굳이 이해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지구 반대편 어딘가엔 이런 사랑을 하는 커플도 있겠구나, 하고 넘어가면 그만인 것을. 어차피 남미식 연애든, 한국식 연애든, 변덕스러운 예술가 커플의 연애든, 바른 생활 공무원 커플의 연애든 원래 연애란 게 남이 보면 이해 안 가는 것 투성이지 않은가. 또 다른 누군가는 이 영화의 스토리가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특히 쿠바에서 구두닦이를 하며 은둔하던 노인 치코가 다시 그래미 수상을 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는 부분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것도 음악 감독 베보 발데스 자신의. 실제로 베보 발데스는 공연 중 만난 한 여인과 뜨거운 사랑에 빠지고 나서 어느 날 종적을 감췄고, 80세가 넘는 나이에 다시 음악 활동을 개시한 뒤 그래미를 2번이나 수상했다.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던 두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 힌트를 하나 주자면, 영화 속 결말은 픽션이라는 사실. 가을밤, 모히또를 한 잔 들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감상하자. 영화 속 결말이 어떻든 간에,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사람과 원 없이 사랑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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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에 대하여 <UP>
수많은 웰메이드 픽사 영화 중에서도 이 작품이 특별한 건 역시 오프닝 때문이다. 주인공 ‘칼’ 할아버지가 평생을 함께해온 아내 ‘엘리’와 처음 만나서 어른이 되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늙어가는, 그러니까 한 사람의 인생 여정을 15분으로 압축해서 보여준다. 아주 귀엽고 애틋한 방식으로. 이 작품을 본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아마 열에 아홉은 시작하자마자 오프닝 시퀀스에서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고 고백할 거다. 이동진 영화평론가 또한 UP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역사상 최고의 오프닝 시퀀스’라는 표현을 쓰며 극찬한 적이 있다.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또 늙어간다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 걸까?
이 오프닝 시퀀스는 따로 떼어내도 그 자체로 훌륭하지만, 이후로 주인공 ‘칼’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열쇠가 되기도 한다. 모험을 좋아하던 두 사람은 베네수엘라의 앙헬 폭포를 보러 가는 게 꿈이었다. 그러나 먹고사니즘에 치여서 꿈은 조금씩 뒤로 밀려나게 되고, 그렇게 ‘언젠가는’ 떠날 것을 꿈꾸다가 엘리가 세상을 떠난다. 아내를 떠나보내고 칼은 결심한다. 아내와 평생 함께한 이 집에 2만 개(실제론 2,600만 개의 풍선을 달아야 하지만 여기에선 만화적 상상력을 첨가했다.)의 풍선을 매달아 앙헬 폭포로 떠나기로. 그 가운데 모험을 좋아하는 꼬마-흡사 칼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한- ‘러셀’이 우연히 합류하게 되고 그러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이 이 영화의 메인 스토리다. 비바람을 만나고, 하늘에서 추락하고, 악당과 대결하고…
이후 전개되는 에피소드들은 여느 만화 영화에서 익숙하게 봤을 법한 뻔한 것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말미에 우리가 받는 감동은 여느 만화 영화에선 결코 느낄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최고의 모험은 사랑하는 사람과 늙어가는 평범한 일상이라는 단순하지만 특별한 진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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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악에 대하여 <돼지의 왕>
만약 당신이 연상호의 전작들을 훑어보기로 결심했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사이비>, <창>, <돼지의 왕>, <지옥 - 두 개의 삶 >, <사랑은 단백질> 등에서 구현된 그의 작품 세계는 ‘천만 영화’ <부산행>과는 전혀 결이 다르니까. 그야말로 ‘현실은 시궁창’인 우울한 배경, 죽거나 죽이는 등장인물들, 극단으로 치닫는 최악의 전개는 물론이거니와 일단 그림체부터 불편하다. (연상호 만화가 디즈니스러운 어여쁜 그림체라면 그게 더 안 어울릴 것 같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2011년 개봉한 ‘돼지의 왕’은 감독 연상호를 대중에게 알린 출세작이다. 급우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던 중학생 ‘경민’과 ‘종석’은 그들의 구원자 ‘철이’를 만나고 약육강식의 논리에 눈을 뜬다. 철이가 두 소년을 아지트로 불러서 일장연설을 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잘 드러내는 부분. ‘지배하고 먹는 개’가 될 것인지 ‘지배당하고 먹히는 돼지’가 될 것인지 기로에 섰던 두 소년은 결국 돼지가 되는 쪽을 택한다.
영화가 개봉했을 2011년 말은 ‘대전 여고생 사건’, ‘대구 중학생 사건’, ‘광주 중학생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 학교 폭력, 집단 괴롭힘에 대한 사회적인 목소리가 커졌던 시기다. 덕분에 영화도 더욱 주목받은 측면이 있다. 만약 이 영화를 보고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저런 학교가 어디 있느냐’고 말한다면 당신은 행운아다. 만약 이 영화를 보고 지우고 싶었던 기억이 떠올라서 괴롭거나 분노하거나 연민을 느낀다면... 당신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르려 주고 싶다. 당신의 학창시절도 꽤 힘들었겠구나.
돼지가 되고 싶어 했던 두 소년은 어떤 어른으로 성장했을까? 그들이 사는 세상은 종석의 읊조림처럼 여전히 ‘얼음보다 차가운 아스팔트와 그보다 더 차가운 육신이 나뒹구는’ 그런 곳일까? 영화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덧붙여 두 번의 충격적인 반전도 있으니 눈을 크게 뜰 것. 나쁜 일은 언제나 순식간에 다가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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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했습니다. *
* 이 컨텐츠는 필진 '모로즈미'님의 개인적인 관점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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