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짓 존스가 돌아왔다. 첫 편이 나온 지 15년 만이다. 그 세월을 견딜 만큼 우리는 브리짓을 사랑했다. 브리짓은 진창길을 구르며 헤쳐가는 여자다. 기대한 바로 그 지점에서 인생은 메롱 하거나 뒤통수를 후려친다. 브리짓은 그 얄궂은 인생에 볼을 붉히며 우는 듯 웃을 수 있는 여자다. 르네 젤위거는 캐스팅 1순위인 적이 거의 없었다. 영국인들은 브리짓 존스 역을 케이트 윈슬렛이 맡아주길 바랐다. <시카고>의 록시 하트 역은 샤를리즈 테론이 1순위였다. 브리짓 역에 캐스팅 된 뒤 젤위거는 런던에서 살며 출판사에 위장취업을 했다. 록시 하트가 되려고 열 달 간 '댄스와 가창의 지옥훈련'을 이겨냈다. 그렇게 한 허들씩 넘어 캐릭터와 완전히 하나가 됐다.
<브리짓> 시리즈 이후 상복도 많았고 몸값도 뛰었지만, 삶이 녹록했던 건 아니다. 2010년 뒤에는 거의 영화도 찍지 않았다. 그러나 누가 그에게 '방전'을 말하겠나. 별별 민망한 순간들과 외로움을 이겨낸 브리짓이다. '올 바이 마이 셀프'를 부르며 울부짖을지언정, 자기를 놓은 적 없는 그다. 채플린이 말한,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인 인생, 그걸 보여주는 게 브리짓, 르네 젤위거의 얼굴이다.
글 | 김소민
# [1994 - 25살] 할리우드에 입성하다
아버지는 스위스에서, 어머니는 노르웨이에서 온 이민자였다. 젤위거는 미국 텍사스 시골마을에서 자랐다. 고등학교 때 연극서클에서 활동하며 연기의 꿈을 키웠다. 연기로 진로를 결정했지만 할리우드로 올 형편은 못됐다. 텍사스에 머물며 영화 <청춘은 괴로워> 등에서 단역을 따냈다. 그러다 함께 연기한 적이 있는 매튜 맥커너히 소개로 <러브 앤 A. 45>의 주연을 맡게 됐다. 이 역으로 할리우드 감독들 눈에 들어 로스앤젤레스로 향한다.
# [1996 - 27살] 선댄스를 놀라게 하다
<이 넓은 세상>(국내에는 <세상의 모든 사랑>으로 소개)이야말로 르네 젤위거가 배우로서 존재감을 처음으로 알린 작품이다. 1930년대 텍사스를 배경으로 젊은 교사 노발린과 펄프작가 로버트의 인연을 그린 이 영화는 선댄스영화제에서 상영돼 관객들에게 갈채 받았다. 원래는 노발린 역할도 그의 몫이 아니었는데 캐스팅됐던 배우가 갑작스럽게 임신하는 바람에 그의 차지가 됐다. 그는 이렇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을 만큼 준비된 배우였다.
# [1997 - 28살] 톰 크루즈와 호흡을 맞추다
톰 크루즈는 이미 톱 클래스였다. <제리 맥과이어>에서 당연히 그의 상대역으로 카메론 디아즈, 위노나 라이더 등이 거론됐는데 다들 이런저런 사정이 생겼다. 그렇게 인생의 쓴맛 다 보고도 사랑과 이상을 믿는 싱글맘 도로시 역이 르네 젤위거에게 왔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도로시가 곧 르네 젤위거였다. <제리 맥과이어> 이후 그의 몸값은 치솟았다. 그런데 그는 다음 작품으로 독립영화 <페이탈 서스펙트>를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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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 - 29살] 코믹 마력을 발산하다
<너스 베티>의 베티는 좋아하는 연속극 주인공과 사랑을 이루겠다고 길 떠나는 대책 없는 시골 여자다. 원래는 조디 포스터한테 갔던 시나리오다. 르네 젤위거는 드라마와 실제를 구별하지 못하는 베티를 이해하려고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들을 따라다녔다. 이 영화로 골든글로브 코미디 뮤지컬 부문 여우주연상을 타는데, 수상자를 호명하는 순간 그는 화장실에 있었다.
# [2000 - 31살] 코미디로 순항하다
소심한 찰리와 공격적인 행크는 한사람이다. 경찰관 찰리가 정신분열증을 일으키며 생겨난 두 인격이다. 이 두 인격에게 모두 사랑받는 여자가 아이린, 르네 젤위거다. <미, 마이셀프, 아이린>에서 짐 캐리의 연인으로 나왔는데 둘은 곧 진짜 연인이 된다. 그러나 이 관계는 그리 오래 가지못했다. 그렇다고 울고 있을 젤위거가 아니다. 이듬해 그의 인생을 바꿔놓을 영화가 온다.
# [2001 - 32살] 브리짓이 되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주인공으로 영국인들은 케이트 윈슬렛을 밀었다. 상대역 휴 그랜트마저 "웬 텍사스 여자가 런던 여성 브리짓을 연기한다는 게 믿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촬영장 밖에서도 영국식 영어만 썼다. '팻 닥터' 처방을 따라 흑맥주, 피자, 초콜릿으로 7kg을 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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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 - 33살] 재즈 팜프파탈이 되다
스타 만들어주겠다고 속이고 제 욕심만 채운 남자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는 "죽일 수만 있다면, 한 번 더 죽이고 싶다"고 말하는 록시 하트는 브리짓의 반대편에 서 있는 듯하다. 한때 샤를리즈 테론이 물망에 올랐던 캐릭터인데 샤를리즈 테론은 순진하면서도 간교하기에는 "너무 완벽했다." 자기 자신에게 속으면서도 욕망을 숨기지 않는 록시는 한마디로 어설픈 팜므 파탈, 그러니 브리짓형 팜므 파탈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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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 - 34살] 오스카를 거머쥐다
주드 로, 니콜 키드먼과 함께 나온 <콜드 마운틴>에서 르네 젤위거는 남북전쟁이라는 역경의 세월을 억척스럽게 건너는 산골여자다. 이 영화로 그는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그뒤 꾸준히 영화를 찍던 그는 2010년 <마이 러브 송>을 마지막으로 지난 6년 간 스크린에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상처를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할리우드를 멀리 떠나 성장할 때였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우리의영원한 브리짓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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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했습니다. *
* 본 포스팅의 원본 글은 B tv 매거진 11월호(링크)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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