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링크)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 <판도라>는 모두가 ‘선물’ 같은 존재로 여겼던 원자력이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국가적 재앙을 초래하는 과정을 조명하는 영화다. 고강도의 지진이 한국 동남권 지역을 강타하고, 수십 년째 가동 중인 원전 ‘한별1호기’에 균열이 생긴다. 관계자들의 안전불감증으로 인해 원전의 균열은 폭발사고로 이어지고, 핵연료가 공기 중에 노출돼 수백만 명의 시민이 위험에 처한다. 이 아비규환의 한가운데 재혁(김남길)이 있다. ‘한별1호기’ 발전소에서 일하는 그는 원전에서 사고로 아버지와 매형을 잃은 아픈과거를 갖고 있다. 폭발사고를 직접 목격하고 동료를 구하기 위해 사고현장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고군분투하는 재혁과 마을에서 지진을 겪고 탈출을 시도하는 그의 어머니 석 여사(김영애), 형수 정혜(문정희), 여자친구 연주(김주현)의 이야기가 함께 진행된다.
글 | 장영엽
# 한국의 불안한 현실에서 출발하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링크)
박정우 감독이 <판도라>에 대한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건 지난 2012년이었다. 당시 <연가시> 개봉을 마무리한 그는 또 다른 재난영화를 구상하고 있었다. “2011년 후쿠시마에서 원전사고가 터지는 걸 봤으니 한국은 어느 정도 대책을 세웠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20~30년 이상 된 낡은 원전(고리1호기)을 재가동한다는데, 난리가 나야 할 상황에서도 너무 조용했다. 이 이야기는 반드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위험을 덮으려는 사람들과 위험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판도라>는 이들 사이에서 잉태된 영화다.
원전사고의 특징은 우연에 의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간에 의해 발생한 재해라는점이다. 사건의 방아쇠를 당긴 건 강력한 지진이었지만 진짜 재앙을 촉발한 연쇄적 요인은 사람에 있다는 걸 <판도라>는 분명히 한다. “지진이 아니라 지진할배가 와도 발전소는 끄떡없다”고 믿는 지역주민들,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었으니 앞으로도 별탈 없을 거라 믿는 원전 전문가들, 시끄러운 일을 만들고 싶지 않은 대한수력원자원 간부들과 관련은 있지만 책임은 지고 싶지 않은 협력업체 직원들의 안일한현실인식은 원전폭발이라는 임계점까지 영화의 긴장감을 한껏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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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판도라>는 ‘컨트롤 타워’인 정부의 위기관리 대응방식에도비판의 날을 세운다. 원전 관계자들이 폭발을 막기 위해 분초를 다투고 있는 시점, 청와대에서는 대통령(김명민)과 총리(이경영)의 파워게임이 한창이다. 대통령에게로 향하는 중요한 정보를 차단하고, 안위에 방해가 될 만한 사람들은 설령 국정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쥐고 있더라도 가차없이 쳐내는 권력자의 존재는 4년 전 구상한 시나리오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한국 정가의 현재와 닮아있다.
# 인간이 만들고 증폭시킨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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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공포는 국가적 재난 상황임에도 정작 꼭알아야 할 정보가 차단돼 있다는 데 있다. 정부와 언론, 원전 전문가들과 구조자들이 정보를 의도적으로 감추거나 갈팡질팡하는 사이 국민들은 매순간 스스로 선택해야 하고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 컨트롤 타워가 무너진 나라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인재, 그리고 이 지옥 같은 풍경 속 기댈 곳 없는 이들의 얼굴에 새겨진 황망한 표정과 공포감은 <판도라>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수백 명의 국민들이 차가운 바다에 수장돼도 정부로부터 별다른 해명을 들을 수 없는 나라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오래된 원전(고리1호기)의 전원이 상실되는 ‘블랙아웃’ 사고가 일어났음에도 은밀하게 재가동이 추진됐던 나라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판도라>는 재난의 시작부터 수습국면까지 가상의 지옥을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지옥을 경험한 이들이면 한가지 교훈은 분명히 알게 될 것 같다. “가만히 있어도 괜찮다”는 말을 경계하는 것, 이것이 모든 해결책의 시작이라는 점 말이다.
#원전 #필리핀 #바탄 #비율은_일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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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원전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이 질문은 <판도라>를 준비하는 모든 제작진의 숙제였다. 민간에 온전히 공개되지 않는 폐쇄적인 시설이라는 점이 난제였지만 제작진은 한국의 고리1호기와 거의 흡사한 원전시설을 갖춘 필리핀 바탄의 원자력발전소에서 그 답을 찾았다. 한 번도 가동되지 않은 채 관광명소로 활용되고 있는 이곳은 <판도라> 속 원전의 실제 모델이 됐다. 제작진이 실제 원전과 같은 크기의 세트를 짓기로 결정한 건 “진짜처럼 보여야 한다는 이 영화의 기본적인 전제를 충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결정이었다고, 강승룡 미술감독은 말한다. 원전의 외부를 구현하려면 4천여 평의 부지가 필요했는데, 이 때문에 제작진은 기존에 생각했던 부산 기장이 아니라 춘천 캠프 페이지(예전 미군 주둔지)에 세트를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원전 내부 세트는 안성 DIMA 종합촬영소에 만들었다.
#재난사태 #시뮬레이션 #현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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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의 시발점이 되는 건물을 구현하는 것만큼이나 재난에 따라 어떤 일들이 순차적으로 일어나는지 표현하는 게 중요했다.” 강승룡 미술감독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폭발이 일어나는 원자력발전소의 5km, 10km, 30km, 50km 반경에 있는 공간에서 일어날 법한 반응을 시뮬레이션했다. 방사능에 직접 노출된 이들의 증상을 현실감 있게 표현하는 것도 관건이었다. 강승룡 미술감독은 “핵심은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며 “실제 데이터와 영화적 상상력 사이의 간극은 배우들의 연기가 채워줬다”고 말했다.
#6208명 #차량은_80대 #300~400이_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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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80명. <판도라>에 출연한 보조출연진의 수다. 재난의 풍경을 조명할 때 풀숏을 선호하는 박정우 감독의 연출 스타일에 따라, 제작진은 화면 곳곳을 꽉 채우기 위해 대규모 출연진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숙소가 안 잡힌다. 춘천 촬영이면 서울 가는 버스라도 대절하는데, 부산에서 촬영하니 장난이 아니었다.”(백경숙 프로듀서) 고속도로 피난장면은 세종시, 화정 인근 미개통도로에서 “차선을 긋고, 중앙분리대를 만들어” 촬영했는데, 하루에 동원된 폐차만 80대 이상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연기나 분진이 온전히 CG가 아니다 보니, 스태프들이 늘 마스크를 써야 했고 폭발장면을 찍을 때는 파편과 재가 날아다녀 조심해야 했다.”(백경숙 프로듀서)
#지진 #월촌리 #아날로그가_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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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할리우드에서 잘 쓰는 짐벌장치(거대한 판 아래 진동기계장치를 넣어 흔들리는 장면을 촬영)를 사용해볼까 했는데 너무 비쌌고, 지진방제연구센터에 있는 진동장비는 규모가 큰 장면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작았다.” 고민하던 백경숙 프로듀서가 문득 생각해낸 건 <내 아내의 모든 것>(2012)의 지진장면이었다. “당시 PD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찍었냐고 물어봤다. 벽을 잡고 흔들었다고 했다. 아날로그가 답이었다. 그래서 우리도 흔들었다. 감쪽같지 않나. (웃음)” 월촌리를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만든 지진을 표현하기 위해, 스태프들은 떨어지거나 부서질 물건들에 일일이 피아노줄을 묶어 흔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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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했습니다. *
* 본 포스팅의 원본 글은 B tv 매거진 2017년 1월호(링크)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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