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소년 같다. 그렁그렁한 눈망울은 유약하고 위험하다. <엑스맨> 시리즈의 프로페서X(찰스 자비에)는 제임스 맥어보이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성공한 역할이자 튀는 역인지도 모르겠다. 인간과 돌연변이의 공존을 꿈꾸는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소년은 돌연변이들의 정신적 ‘아버지’가 됐다. <엑스맨> 시리즈의 프리퀄 3부작, <퍼스트 클래스>(2011)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2014) 그리고 <아포칼립스>(2016)는 그 소년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프로페서X가 되기 전 맥어보이는 믿음직한 역할을 맡은 적이 거의 없다. <원티드>(2008)에서 상관이 소리만 높여도 식은땀을 흘려댄다.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2005)에서 반인반수 툼누스는 수상하기 그지없다. <어톤먼트>(2007)의 로비는 의대 진학을 앞둔 그야말로 전도유망한 청년인데, 대갓집 딸과 사랑을 확인하기가 무섭게 얼토당토않은 오해에 휘말리고 만다. 로비가 그리도 안타까운 것은, 인생의 불합리한 공격에도 시들지 않는 청초함에 있다. 그러고 보니 프로페서X가 튀는 역할이라고 했던 건 정정해야겠다. 찰스 자비에와 로비는 닮은 구석이 있다. 둘 속에 모두 ‘낙관’이라는 소년은 살아있으니 말이다.
글 | 김소민 자유기고가
16살의 맥어보이 우연히 데뷔하다(1995)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인 그의 어머니는 간호사, 아버지는 버스운전사였다. 어릴 때는 가톨릭 신부가 되고 싶어했다. 어느 날 그의 학교에 찾아온 배우 겸 감독 데이비드 헤이먼이 영화에 출연해보겠냐고 했다. <니어 룸>이다. 이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해 연기의 맛을 본 뒤에도 그는 여전히 배우라는 직업에 시큰둥했다. 해군과 스코틀랜드 드라마 아카데미에 동시에 지원했는데, 아카데미 쪽에 먼저 합격하는 바람에 연기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26살의 맥어보이, 스타덤의 발판을 놓다(2005)
데뷔 10년 만에 출연한 판타지 블록버스터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에서 그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웃통은 벗었는데 근육은 없다. 대신 뾰족 솟은 귀와 염소다리가 있다. 성격도 별 볼 일 없다. 겁 많고 소심한데 기회만 있으면 주인공 꼬마를 자꾸 납치하려 든다. 그러다가 금세 크게 참회하니 미워할 수도 없는 캐릭터다. 그는 “툼누스 이후 사람 연기를 할 수 있을지 전혀 몰랐다”고 했는데 툼누스 캐릭터 덕에 사람 역이 밀려들었다.
27살의 맥어보이, 악마를 만나다(2006)
우간다 독재자 이디 아민은 정적의 인육을 먹고 그 머리를 냉장고에 넣은 뒤 감상했다는 자다. 그 광기의 독재자를 다룬 영화가 <라스트킹>이다. 맥어보이는 그야말로 ‘객기’로 아프리카 땅에 건너가서 이디 아민의 주치의가 된다. 이 철부지는 게다가 이디 아민의 세 번째 부인과 사랑에 빠진다. 영화를 쥐고 흔든 건 이디 아민을 연기한 포레스트 휘태커였지만, 등짝을 쳐주고 싶을 만큼 철딱서니 없는 캐릭터로 극의 긴장감을 돋운 맥어보이의 공도 컸다.
28살의 맥어보이, 순정의 아이콘이 되다(2007)
<어톤먼트>는 이안 매큐언의 소설이 원작이다. ‘속터짐 주의’ 경고를 달아야 한다. 인생이란 게 사소한 오해만으로도 얼마나 심하게 휘어버릴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 불안에 휘말려버리는게 의대 입학을 앞둔 청년 로비다. 조 라이트 감독은 “로비의 첫 번 째 조건은 긍정적인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으며 제임스는 그걸 가졌다”고 말했다. 이 역할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29살의 맥어보이, 액션 본능을 보여주다(2008)
<원티드>는 그 옛날 홍콩액션의 ‘뻥카’도 뻥 차버릴 정도의 ‘뻥액션’을 보는 재미가 빼어난 영화다. 총알이 타원을 그리며 장애물을 비껴가 과녁을 맞힌다. 주인공이 찌질할수록 반전은 더 짜릿하다. 이 영화에 이어 <테이크다운>(2013)에서 그는 기골 장대한 장사들만 액션 연기를 하는 게 아니란 걸 보여준다.
32살의 맥어보이, 시리즈의 문을 열다(2011)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는 프로페서X와 매그니토의 어린 시절을 통해 그들이 다수의 억압에 맞서 왜 엇갈린 선택을 하게 됐는지 보여준다. 프로페서X가 되기 전 찰스 자비에는 명문대 출신에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으로 여자를 꾀는 바람둥이다. 구김살 없이 천진하니 맥어보이랑 딱이다.
34살의 맥어보이, 망가지다(2013)
진짜 나쁜 남자가 되기로 했다. 맥어보이는 “아마도 관객들이 나한테 기대하는 모습은 아닐 거다”라 고 말했다. 순정한 소년 속에 묻혀있던 불안의 핵을 끄집어내니 <필스>의 브루스 로버트슨이 됐다. 예의 없고 거칠고 악랄한 경찰인 그가 술과 마약에 절어 사는 까닭, 자신을 처절하게 내다버리는 이유는 뜻 밖에도 죄책감이다. 맥어보이의 푸른 눈동자는 어떤 영화에서보다 불안하게 흔들린다. 이 영화로 런던비평가협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36살의 맥어보이, 연극 무대에 서다(2015)
연극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맥어보이는 연어가 회귀 하듯 연극 무대로 돌아가곤 한다. 2013년에 공연한 <맥베스>로 올리비에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이후 빡빡한 촬영일정을 소화하고 2015년 <지배계급>으로 트라팔가 스튜디오 무대로 돌아온 그는 “노래하고 춤추고 플루트를 불고 검도를 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괴물과 싸워야 했다”며 즐거운 기색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연극은 이렇다. “연극의 기원은 인간 제물을 바치는 거죠.” 그는 기꺼이 그 제물이 됐다.
* 위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했습니다. *
* 본 포스팅의 원본 글은 B tv 매거진 7월호(링크)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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