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름을 기억하자. 윤가은, 조성은. 첫 장편영화로 저력을 보여준 감독들이다. B tv가 ‘데뷔작’으로 오래 입길에 오를 이 두 감독의 영화에 더해 유명한 연극연출가 테아 샤록의 첫 영화 <미 비포 유>까지 마련했다.
글 | 김소민 자유기고가
#윤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 <우리들>
어쩌면 우리 인생 전체를 건 시도가 이것인지도 모른다. 나와 너가 우리가 되는 것. 누구에게나 그 바람은 강렬하나 다가갈수록 서로 미끄러져버리는 고통 또한 누구나 겪는다. N극과 S극 같았던 게 바로 한순간 전인데 대체 뭔 영문인지 대화는 비끌리고 그럴 때마다 각도는 틀어져 어느새 N극과 N극으로 마주 선 고통,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지금 4학년 3반 은따 선(최수인)은 이 고통을 격심하게 겪는 중이다. 아무도 모른다. 왜 선이 은따인 지 말이다. 왜 공부 잘하고 인기도 많은 보라는 선을 싫어하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그 까닭도 모른 채 선은 피구 시간에 마지막까지 팀에 끼지 못하고 남아 입술을 깨물어야 한다. 그 소녀에게 기회가 왔다. 여름방학이 시작하는 날 전학 생 지아(설혜인)를 만나 친구가 된다. 선은 엄마 아빠가 일하러 간 사이 동생을 돌봐야 하고 용돈도 풍족하지 않다. 지아는 용돈은 넘치는데 부모가 이혼해 할머니와 산다. 둘만 있을 때 결핍은 되레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 된다. 지아는 선이 좋아하는 색연필을 훔쳐주고 선은 지아가 좋아하는 김밥을 싸달라고 엄마를 조른다. 흡사 연인 사이다. 그리고 으레 그렇듯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개학하고 난 뒤 지아가 선을 밀어내기 시작한다. 생일잔치에 초대하지 않고 선물도 받지 않는다. 보라와 같은 학원에 다니게 된 지아는 선이 은따인 걸 알고 거리를 두고 둘 사이엔 원치 않은 폭로전이 시작된다. 이 또한 공동체에 끼려는 몸부림이다. 소녀들의 폭력은 조용하고 살벌했다. 뒤돌아선 등처럼 가슴에 선혈이 흐르도록 만드는 것도 없다. “요즘 핸드폰 없는 애가 어딨어?” 결핍은 이제 상대를 공격하는 무기가 됐다. 관계는 파탄 지경에 이른다.
이 소녀들의 고통은 고스란 히 오늘을 사는 어른의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영화는 그 파탄난 관계의 파편들을 보여주자고 한 것 같지 않다. 방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관계 탓에 피흘리는 마음을 부여잡고도, 그 상처 딱정이를 수없이 떼내며 다시는 사람 따위 믿지 않겠다 다짐하고도, 우리는 안다. 우리는 결코 ‘우리’가 되고 싶은 바람을 포기할 수 없다는 걸, 또 그걸 포기한 삶은 더 이상 심장이 뛰는 삶이 아니란 걸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결국 실패할지라도, 사랑을 한다. 이 소녀들처럼.
윤가은 감독은 세 편의 단편으로 벌써 눈밝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루비아의 맛> <손님> <콩나물>, 다 소녀들 이야기다. <우리들>의 출발은 윤 감독이 6학년 때 단짝에게 배신당한 경험이다. 감독은 “진짜 중요한 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더라”라고 말한다. 첫 시나리오는 미스터리였다. 그런데 <우리들>의 총괄기획을 맡은 이창동은 “이야기가 가짜 같다, 진짜 이야기를 써보라”고 밀어붙 였다. “이창동 선생님이 영혼을 막 뒤흔드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셨어요. 뭐가 진짜라는 거지?” 그리고 단언컨대, 이 영화는 진짜다. 아이들 연기도 진짜다. 오디션부터 달랐다. 윤 감독은 “1차 오디션 때는 아이와 일대일로 얘기를 나누고 그 중 기억에 남는 친구들을 다시 불러 역할놀이, 연극놀이를 했다”며 “짜여진 대사가 아니라 시나리오와 가장 흡사한 상황을 주고 촬영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조성은 감독의 첫 장편영화 <우리 연애의 이력>
유행가 가사처럼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랑을 한다는데 그 흔하디 흔한 연애담을 들여다보면 다들 흔하지 않은 이야기다. 그 다른 결을 얼마나 섬세하게 포착하느냐가 감독의 역량이라 하겠다. 조성은 감독의 데뷔작 <우리 연애의 이력>은 그 연애담의 속살을 많이 본 듯, 처음 보는 방식으로 풀어놓는다. 아역 출신 배우 연이(전혜빈)와 영화감독을 꿈꾸는 조연출 선재(신민철)는 이혼했다. 그런데 이별은 못했다. 두 사람의 연애 이야기로 함께 시나리오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꾸 추억을 되씹게 되는데 그 추억을 놓고 시나리오 지분 싸움을 벌여야 하는 형국이다. 감독의 유머감각과 연애에 대한 통찰이 번뜩인다. 대사가 찰지다. 전혜빈이 이렇게 연기를 잘했나 놀라게 되는 건 덤이다. 조성은 감독의 남편은 조명감독이다. 실제 영화계 커플인 셈이다. 조 감독은 “내가 느꼈던 사소하고 치사한 감정들을 돌아본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 주변 취재를 바탕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며 “법원에 자주 가서 바깥에 오가는 사람들 모습을 오래 지켜보았다”고 말했다.
#연극연출가 테아 샤록의 첫 영화 <미 비포 유>
테아 샤록, 영국 연극판에선 알아주는 이름이다. 그가 베스트 셀러 <미 비포 유>를 영화로 옮겼다. 존엄사라는 묵직한 주제에 신데렐라 멜로의 당의정을 입혔다. 루이자(에밀리아 클라크)는 그야말로 캔디다. 근면성실 노동했으나 일하던 카페가 폐업하면서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됐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그 앞에 나타난 새 직장, 로맨스를 위한 포석을 죄다 깐 곳이다. 일단 이 남자는 저택에 산다. 그림처럼 잘 생겼다. 루이자는 2년 전 사고를 당해 전신마비 환자가 된 윌(샘 클라플린)을 간병해야 하니 그에게 붙어다녀야 한다. 삶의 의욕을 잃은 윌의 기운을 북돋워줘야 하니 좋은 데는 다 간다. 사랑이 안 싹트면 신기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 심쿵한 상황에서도 윌은 존엄사를 고집한다. 영화가 전형적인 캔디 스토리에서 방향을 트는 지점이다. 그 커브길에서 여러 관객이 눈물을 쏟게 될 듯하다.
* 위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했습니다. *
* 본 포스팅의 원본 글은 B tv 매거진 8월호(링크)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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