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10. 17:40


 

뭐든지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운이 몽글몽글 솟아나는 봄은 신비한 계절! 아직은 바람이 차갑게 느껴진다면 영화에서 먼저 봄을 맞이하면 어떨까? 봄의 기운을 가득 담은 따뜻한 영화들을 골랐다.

 

# 블루밍 러브 (A Little Chaos)

독립적인 여성상을 보이는 동시에 특유의 부드러움을 잃지 않는 배우, 케이트 윈슬렛이 이번에는 정원사로 변신했다. <블루밍 러브(2015)>는 프랑스 왕정 사상 가장 화려한 시기로 꼽히는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을 배경으로 삼는다. 나이 든 왕이 원하는 것은 전원생활의 소박함, 그리고 이전에 본 적 없는 ‘천국’을 닮은 새로운 정원. 그리고 대대로 왕의 정원을 가꿨던 르 노트르(마티아스 쇼에나에츠)는 새로운 정원을 만들 인물로 드 바라(케이트 윈슬렛)을 지목한다. 혼자의 몸으로 궁전 한복판에 들어서게 된 드 바라. 정원이 차츰 모습을 갖춰가고, 꽃들이 자리를 찾는 동안 왕궁 안의 사람들의 관계도 조금씩 변화를 맞이한다. <블루밍 러브>는 올초 세상을 떠난 우리의 스네이프 교수, 알란 릭먼의 감독 연출작이기도 하다. 그는 영화에서 직접 루이 14세를 연기했는데, 노년의 배우와 화려한 시대를 마감하는 왕의 모습이 어쩐지 닮은 구석이 있다.


+ 또 다른 관전 포인트

묘한 눈빛의 배우, 마티아스 쇼에나에츠의 매력! 벨기에 출신의 배우는 최근 개봉한 <대니시 걸>에서 아이너(에디 레드메인)의 옛 친구로 출연한 바 있다.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비거 스플래시> 등에서 캐리 멀리건, 틸다 스윈튼 등의 배우와 호흡을 맞춘 이 남자를 기억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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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월 이야기 (四月物語)

영화 <4월 이야기(1998)>는 새 학기가 시작되는 4월을 맞이해, 홋카이도에서 도쿄로 상경한 우즈키(마츠 다카코)의 시선에서 시작한다. 도쿄 생활이 처음인 그녀가 자리를 잡은 곳은 도심에서 살짝 벗어난 한적한 동네, 무사시노. 상경한 그녀에게는 크고 작은 사건이 끊이지 않고, 얇아진 옷차림만큼 도쿄 생활에 적응했을 무렵, 우즈키가 도쿄의 대학에 온 이유는 그녀의 짝사랑 때문임이 밝혀진다. 수줍지만 애달픈 짝사랑의 심정도, 조용히 우즈키가 감정을 터뜨리던 순간 속살대며 내리던 비도, 마치 봄 아지랑이처럼 모호하고, 그래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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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Kirschbluten – Hanami)

자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파니 핑크(1994)>로 훌륭한 영화감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또한 증명한 도리스 도리는 재능 있는 여성 창작자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코믹과 냉소가 주무기였던 그녀가,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2008)> 같은 영화를 만들 거라고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거다. 함께 떠나기로 한 베를린 여행을 앞두고, 아내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다. 혼자 남은 남편이 선택한 것은 죽은 아내의 기억을 따라 홀로 여행길에 오르는 것. 아내가 즐겨 입던 푸른색 스웨터를 들고 함께 여행했던 바다를 찾고, 아내가 보고 싶어 했던 것들의 흔적을 쫓는다. ‘꽃구경’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 ‘花見(하나미)’를 포함한 원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영화는 벚꽃이 흐드러진 계절의 풍경을 가득 담는다. 더없이 아름다운 광경이지만, 그 아래 홀로 선 노인의 모습은 쓸쓸하고, 떨어지는 벚꽃 이파리는 덧없다. 하지만 그 ‘유한함’ 때문에, 오히려 소중한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세상에는 이런 사랑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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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갓 헬프 더 걸 (God Help the Girl)

아름답지만 조금은 심심한 도시, 스코틀랜드의 수도 글래스고. 이 조용한 도시에서 서로 이끌린 소년과 소녀가 있다. 위태로운 방황의 시기를 보내는 매력적인 소녀 이브(에밀리 브라이언). 수줍지만 음악을 만드는 재능이 있는 제임스(올리 알렉산더), 그리고 티없이 엉뚱한 성격을 가진 캐시(한나 머레이)까지. 천천히 흘러가는 일상을 타파하기 위한 세 청춘이 세운 계략은 다음과 같다. 밴드를 만드는 것! 재미로 시작한 밴드 활동은 차츰 진지해지고, 영화는 등장인물들이 입고 나온 빈티지 의상처럼 친숙하고 예쁜 방향으로 흘러간다. 영화의 배경은 여름이지만, 간지럽게 폭발하는 정서는 봄의 기운에 걸맞다.


+ 또 다른 관전 포인트

벨 앤 세바스찬의 프론트맨, 스튜어트 머독의 감독 데뷔작. 영화를 감싸 안는 전반적인 음악에서 벨 앤 세바스찬과는 또 다른, 그의 음악적 성취를 엿볼 수 있다. 영화는 2014년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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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 스케치 (Reality Bites)

지금 보면 다소 촌스러운 제목이지만, ‘청춘’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잘 어울리는 영화가 있을까? <청춘스케치(1994)>는 무려 20년 전 작품이지만, 대학을 갓 졸업한 영화 속 청춘들의 고민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고 싶은 일과 직업 사이에서 균형 찾기, 안정된 관계 만들기, 그리고 기성 세대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기.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거야. 담배 한 모금, 커피 한 잔, 약간의 대화, 너와 나, 그리고 5달러….” 연인인 레이나(위노나 라이더)에게 건네는 트로이(에단 호크)의 말은 근사하지만, 편의점 계산대 앞에서 ‘My Sharona’에 맞춰 몸을 흔들던 청춘들은 이제는 그 이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무엇보다 앳된 에단 호크와 위노나 라이더를 한 화면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렌다!


+ 또 다른 관전 포인트

역시나 앳된 벤 스틸러. <로얄 테넌바움>과 <쥬랜더>, <미트 페어런츠>, 그리고 주연으로서의 무게감을 온전히 보여준 최근작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까지. 비주류에 가까운 인물상을 꾸준히 연기해 온 벤 스틸러가 <청춘 스케치>에서는 전형적인 여피족으로 등장한다. 아마 벤 스틸러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정상적인 인물일 듯.


# 버스, 정류장 (L’Abri)

<버스, 정류장(2001)>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은 다분히 클리셰적이다. 대학 동기들처럼 명확한 ‘사회인’이 되지 못하고, 학생과 직장인 사이의 어딘가에 어정쩡하게 놓여있는 학원 강사 재섭(김태우),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원조교제를 하는 냉소적인 고등학생 소희(김민정). 어른스러운 척하지만 다른 어른들보다 ‘관습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재섭에게 호감을 갖는 소희는 사실 어리기 짝이 없고, 한참 어린 학생에게 마음을 키워나가는 재섭 역시 성숙한 어른은 아니다. 하지만 그 불안한 면모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깊은 위로가 된다. 그리고 오랜만에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쳤을 때 울음을 먼저 터뜨리는 것은 어른인 재섭이다. 봄 바다처럼 조금은 쓸쓸하고 허전하지만, 그곳에는 온기가 있다. 영화의 외국어 제목인 ‘L’Abri’는 불어로 ‘쉼터’라는 의미다. 두 사람에게 버스 정류장이 그러했듯이.


+ 또 다른 관전 포인트

영화의 테마곡인 루시드폴의 ‘그대 손으로’. 노랫말도, 정서도, 영화와 더없이 잘 어울린다. 가사의 일부를 옮긴다. “태양은 그 환한 빛으로 어리석은 날 가르치네. 당신은 따뜻한 온기로 얼어붙은 날 데워주네. 언제나 아무 말 없이, 그대 손으로, 그대 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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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를 기울이면 (耳をすませば)

서로가 서로의 첫사랑이라는 것도 모른 채, 서로 이끌리는 소녀와 소년만큼 풋풋한 존재가 또 있을까?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시즈쿠는 도서카드에 적혀있는 세이지란 이름의 소년에게 호기심을 품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심부름 길에서 만난 고양이를 쫓다 도서카드 속의 그 소년, 세이지를 만난다.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는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바이올린 장인’으로 진로를 확실하게 정한 소년, 그리고 그에 자극 받아 소설가로서 꿈을 키워가는 소녀.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던 소년은 소녀에게 고백한다. “시즈쿠, 나랑 결혼해줄래?” 맑고 투명한, 더없이 사랑스러운 시절을 그렸다.  


 

# 빅피쉬 (Big Fish)

팀 버튼의 남자 주인공 중 최고의 로맨티스트를 꼽자면 <가위손(1991)>의 에드워드(조니뎁), 그리고 <빅 피쉬(2003)>의 청년 에드워드 블룸(이완 맥그리거)일 거다. 병상에 누운 아버지를 허풍쟁이라고 생각하던 아들은, 진짜 아버지의 모습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마녀, 거인, 늑대인간, 샴쌍둥이 등 갖가지 인물이 아버지의 과거에는 진짜로 존재했을까? 현실과 판타지가 뒤섞인 화면은 아름답고, 진실과 허풍 사이에서 재구성된 아버지의 과거에서 아내를 향한 길고 오랜 사랑만은 한 점 과장 없이 반짝인다. 노란 수선화 밭에서 던졌던 청혼의 말, “남은 내 평생 동안 당신에 대해 알아가겠어요.” 라는 말처럼.




* 이 컨텐츠는 필진 '이마루'님의 개인적인 관점에서 작성되었습니다.

SK브로드밴드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Posted by SK브로드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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